여기서는 기타 일정, 느낀 점 등을 기록하고자 한다.
아라콜패스 트래킹을 정점으로 이번 여행의 주요 일정은 다 끝났다고 봐도 된다. 다음은 국경을 넘어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이동하여 하루를 보내고 귀국하는 일정이다.
국경 이동을 위해 두 나라 사이의 검문소를 지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초원에 국경임을 알리는 철조망만이 경계를 구분해주고 있다. 아주 옛날에는 아무런 경계도 없었을 곳이다. 검문 절차는 별 문제 없이 금새 끝났다. 그냥 통과의례 정도라고 보면 될 듯하다. 하긴 검문할 게 뭐가 있나 싶다. 통과하고자 기다리는 차량은 카자흐스탄에서 키르기로 넘어가는 쪽이 훨씬 길었다. 관광을 위해 국경을 넘어가는 차들이 많다고 한다. 두 나라의 국력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카자흐스탄이 훨씬 잘 산다. 개인당 소득 1만불 정도라 한다. 카자흐스탄은 일종의 개발독재 과정을 거친 듯 하다. 구 소련 연방으로부터 분리될 때부터 한명의 권력자가 계속 집권해왔고 몇 해 전 권력을 이양해 주신 했으나 아직도 배후 실력자로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들의 지지도도 높다고 하는데 일단 경제적 성과를 이룬 탓이라 보인다.
두 나라의 경제적 차이는 알마티 도착 전부터 눈에 띈다. 일단 도로 포장상태가 좋다. 고속도로를 오가는 화물차도 많고 유럽 유명 브랜드의 대형 트럭들도 자주 눈에 띈다. 승용차도 새차가 많은데 한국의 현대, 기아차가 특히 자주 보인다. 자료를 찾아보니 현대차 현지 공장이 있다. 아마 조립라인 정도의 공장이 있는 모양이다. 일본 도요타 차도 많이 보이는데, 이는 아마 중고로 수입된 차들이 아닌가 싶다. 중국 브랜드의 승용차도 종종 보인다. 외모로는 현대차에 별로 뒤지지 않는다.
알마티 시내로 들어오니 도로가 많이 막힌다. 그 다음날에도 도로가 막히는 것을 자주 경험했다. 자동차 보급률이 급격히 증가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알마티에서 하루 숙박 후 마지막 일정은 골프와 시내관광이다. 원하는 이들은 골프를 치러갔고 나머지 5명은 침불락 전망대, 시내 관광으로 하루를 보냈다. 골프는 좀 별로인 듯했다. 우리나라 골프장 같은 멋진 조경은 없는 듯 했다. 침볼락 전망대는 케이블카를 타고 3천 넘는 고지까지 올라가서 텐산산맥 설경을 보는 것인데 정상에 올랐을 때 날이 흐려서 설경은 보지 못했다. 캐이블카는 두번이나 갈아탈 정도로 길었다. 스키장인 곳이다. 알마티 시내 관광도 특별히 인상적인 곳은 없었다. 시장도 그저그랬고, 이슬람 사원도 별반 감흥을 주진 못했다. 그냥 이곳 사람들 이렇게 사는구나 하는 것 구경하는 정도다.
특별히 찾아간 곳은 고려극장인가 하는 곳이다. 홍범도 장군이 수위로 일했었다고 하는 곳인데 행사가 있어서 문을 닫았다. 그곳 직원에게 행사 소식을 듣고 행사가 열린다는 곳으로 갔다. 대규모 쇼핑몰들이 있는 곳인데 마침 고려인 문화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재수 좋게 보기 힘든 장면을 봤다.
이곳에서 이런 장면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어제가 8월 15일 광복절이란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공연에 나선 아이들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고려인 후손들인데 아마 3,4세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한국사람과는 다른 얼굴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인"이란 제목이 붙은 행사에 참여하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아마 한국의 국력과도 상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에게 고국은 이제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이 아닐까 한다.
알다시피 조선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하게 된 것은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의 의한 것이다. 김숨이란 소설가가 이를 기초로 소설을 낸 게 있는데 (제목이 뭐더라???) 강제 이주의 참혹함을 그 소설을 통해 크게 느낀 적이 있다. 거의 죽기 직전에 이곳 벌판에 버려졌던 이들이 기어이 삶을 이어 나가 오늘에 이르렀다. 삶이라는 것이 참으로 질긴 것이다.
이들에 대한 애착을 느끼는 건 좋으나 이를 과다하게 발전시킬 필요는 없다. 이들은 카자흐스탄 국민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조선족들이 자신의 조국을 중국으로 여기는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마지막 일정은 온천욕, 저녁 식사다. 이 둘을 한 장소에서 했는데 한국인이 경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고려인 출신인 이곳 사람들이고 말이다. 어디에서든 비슷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중국에서도 개방 초기부터 한국인들이 진출해서 식당을 열었다. 종업원들은 조선족을 채용했고.... 시간이 한 참 지나자 이제는 조선족들이 경영자로 나서기 시작했고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다. 아마 그런 일들이 여기서도 일어날 것이다. '민족' '민족'하며 괜히 감동하고 그러는데, 실재 현실에서는 피고용인이고 경쟁자일 뿐이다.
끝으로..
이번 여행에서 친구들 모두 나이 들었다,라는 걸 절감했다. 아주 험난한 일정도 아니었는데 2,3일만에 피곤해했고, 술도 별로 안마셨고, 대다수가 한번 쯤 아팠다. 이제 체력이 딸리는 거다. 앞으로 이런 여행은 안가겠다라는게 다수의 생각이었다. 여행길에서 만난 2,30대 청년들을 보면서 부러웠다. 젊은 시절에 이런 걸 봤어야했는데 싶었다.
40년 친구들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다. 힘든 일정이었고, 일정, 먹거리 등등에 대한 생각들도 달랐을텐테 다들 잘 해줬다. 가령 한식 먹자! 현지식 먹자! 라는 차이가 아무런 갈등 없이 해결되었다. "그래?" "그럼 그래--" 이런 식이다. 일정 첫쨋날 가이드가 이런저런 의견이 나오니 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나온 말 "여기 나온 얘기들 다 무시해도 되요. 자기 뜻 관철시키면서 살아온 인생들 없으니, 그냥 대장이 결정하면 다 따라요." 의견은 제시하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불만 갖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그때 웃으면서 잘 들 따랐다. 사실 여행 중에 관계 틀어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은데 이 정도로 서로 잘 배려하는 관계는 40년 세월 말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서로를 참 알뜰히 살폈다. 누구는 약을 바리바리 싸갖고 와서 나눠줬다. 그냥 나눠준 것만이 아니고 "너 점심 약 먹었어?"하면서 살폈다. 여행 내내 서로를 살피는 말들을 들으며 따뜻했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행복했고 의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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