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여행

유후인보다 나가사키 - 일본 근대화의 마중물

sungwo 2024. 10. 3. 14:49

나가사키 야경 - 다테야마 전망대

 

  일본 여행 많이 가시죠? 일본 중에서도 규슈는 거리가 가까워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중 하나입니다. 한 시간 정도면 가니까요. 규슈의 최대 도시 후쿠오카는 오사카, 도쿄와 더불어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도시입니다. 홈쇼핑에서도 규슈 여행 상품이 많이 팔리는데요, 여행 일정 중 압도적으로 많은 곳이 유후인입니다. 아주 예쁜 거리로 유명한 동네죠. 그런데 저는 규슈 중에서 가장 가볼 만한 곳, 가봐야 하는 곳은 거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유후인보다 볼 것도 많고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도 많은 곳이 규슈에는 수두룩하게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저는 나가사키를 가장 우선으로 뽑습니다.

 

  규슈에는 일본 근대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역사적 장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본 유일의 개항장이었던 나가사키를 비롯해 메이지 유신의 선봉이라 할 수 있는 사쓰마의 가고시마, 칸몬 해협에 접한 도시 기타큐슈, 그리고 규슈 동쪽 해변에 있는 여러 기독교 선교 유적들 등은 일본의 근대사에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곳들입니다. 그중 으뜸은 나가사키이고요.

 

1. 나가사키 평화공원

나가사키 평화박물관 중 원폭 투하 지점 - 성당



  먼저 나가사키 하면 떠오르는 것을 살펴볼까요? 음...... 원자폭탄이 있겠네요. 히로시마 폭격이 있고 나서 며칠 지나 나가사키에도 원자폭탄이 떨어집니다. 그 비극의 역사를 담은 기념관이 나가사키에 있습니다. 기념관이라고 해서 지겨울거라 생각하지 마시고 한번 꼭 가보길 권합니다. 전시도 잘해 놓았고 여러가지 생각할 것도 떠오르게 합니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점은 애초에 미군이 목표했던 지점은 아닙니다. 원래는 해안가 부두를 조준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미쓰비시의 조선소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폭탄은 도시의 한참 안쪽으로 떨어졌습니다. 거기에 바로 천주교 성당이 있었고, 그 주변에 많은 신자들이 살고 있었고요. 참 아이러니합니다. 기독교 국가에서 떨어뜨린 원자폭탄이 하필이면 기독교인들이 밀집해서 살고 있는 곳에 떨어지다니 말이죠. 그리고 이런 평가도 있습니다. 히로시마 원폭으로 충분했다, 그것으로 이미 항복 받은거나 마찬가지인데 굳이 나가사키에 한방 더 떨어뜨려 완전히 기를 죽이려 한 건 좀 심하지 않았느냐 라는 얘기죠. 그것으로 8만명이나 죽었으니 좀 심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나가사키에 천주교 성당이 있다니 좀 의외라고 느끼지 않습니까? 지금도 일본엔 기독교 전파율이 극히 적은데 거기에 그렇게 천주교인들이 많이 살았었는지는 저도 방문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일본에 기독교가 전파된 건 16세기 중반부터입니다. 1543년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규슈 남쪽, 그러니까 가고시마 쪽에 상륙합니다. 그때 일본인들은 포루투갈 사람들로부터 총을 처음 접하게 되죠. 아퀴버스라 불리는 총 두 자루였습니다. 그렇게 받아들인 총을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이 바로 노다 오부나가입니다. 에도시대를 연 세 명의 주인공 (오다 노부나가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도쿠카와 이에야스) 중 한명이죠. 어쨌든 그 후 6년 뒤 예수교 선교사들이 그곳에 다시 상륙해서 선교 활동을 벌였는데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합니다. 예수교란 종파의 사비에르라는 선교사가 주역이었는데 30년 정도만에 규슈 인구의 3분의 1정도까지 개종시켰다고 하니 대단한 성공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 에도막부에서 강력하게 기독교를 탄압하면서 표면적으로는 기독교가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남아 있었는데 그 중심이 바로 나가사키였습니다. 지금도 규슈 동쪽 해안을 따라서 성당 유적지가 곳곳에 있습니다. 나가사키에서는 오우라 천주당을 가보면 되겠네요.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가볼 만합니다.

 

2. 데지마 - 해외로 열린 창구

  그 다음으로 가볼 곳은 데지마입니다. 네덜란드 상인들이 있던 곳이죠. 포르투갈 이후 일본과의 해외 무역을 독점했던 나라가 바로 네덜란드입니다. 막부에서는 외국의 문물이 들어오는 것을 강력하게 통제했죠. 그래서 네덜란드 상인들에게만 교역을 허가했고 이들을 데지마라 불리는 작은 섬 안에 가둬 놓습니다. 이 네덜란드 상인들이 일본에 끼친 영향은 대단했습니다. 에도막부는 그들을 통해 무역을 한 것만이 아니라 해외의 소식을 주의 깊게 듣습니다. 일종의 정보 통로였던거죠. 그래서 막부 사람들은 유럽의 힘이 상당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편전쟁의 결과를 전해 듣고 바짝 긴장합니다. 쇄국은 했지만, 그냥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해서 나름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개혁도 실시합니다. 서구의 문물과 정보가 가장 먼저 닿았던 곳이 바로 나가사키였으며 그런 점에서 데지마와 나가사키 항구는 근대 일본을 연 대표적인 역사적 장소입니다. 메이지유신 이전부터 나가사키 항구에는 영국,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온 군함들이 늘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청나라 상인들도 동네를 형성하고 북적거렸고요. 이를 잘 상상하게 하는 소설이 하나 있습니다. 그 유명한 <료마가 간다>라는 소설입니다. 료마는 메이지 유신의 최대 공로자 중의 한명으로 평가 받는 사람입니다. 드라마로도 방영된 적이 있어서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료마의 주 활동 무대 중 한 곳이 바로 나가사키였습니다. 료마는 나가사키 항구에 가득 찬 외국의 군함들을 보면서 우리 일본도 혁명을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료마가 간다>라는 소설을 읽고 나가사키 항을 바라보면 느낌이 다를 것입니다. 료마의 얘기는 너무 기니까 여기서 끊습니다. 여하튼 메이지 유신을 앞둔 1800년대 중반, 나가사키 항구는 근대화 직전의 혼란과 온갖 비밀 만남들, 새로운 일본을 꿈꾸던 이들의 꿈이 넘쳐나던 곳이었습니다.

나가사키 항

3. 구라바엔 언덕

  이와 관련 있는 장소가 바로 구라바엔 언덕에 있는 글로버 가든입니다. 료마가 활동하던 그 당시 외국 상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고 글로버라는 영국 상인이 살았던 건물이 거기에 있습니다. 당시 외국 상인들이 메이지 혁명을 일으키려는 조슈, 사쓰마 사무라이들에게 총도 팔고 했는데 그런 일들이 벌어졌던 장소입니다. 언덕 위에 있는데요.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사진 찍기 좋은 장소도 많습니다. 거기서 나가사키 항구가 내려다보입니다. 나가사키 항에는 미쓰비시의 조선소가 있습니다, 일본 최초의 근대적 조선소가 세워진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원폭 투하의 목표 지점이기도 했고요. 원폭이 투하되었을 때 그 조선소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징용되어 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피해도 많았을 것입니다. 글로버 가든 건물에는 전시관이 작게 꾸며져 있는데요. 시간 내서 볼만합니다. 일본인들이 료마란 인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일본 근대화의 주역으로서 나가사키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외 일본의 3대 야경이라불리는 나가사키 다테야마 전망대에 가 봐도 좋겠고요, 혹은 영화로 잘 알려져 있는 군함도(하시마섬)도 일본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입니다. 그리고 하우스보르텐이던가요? 아주 큰 테마파크도 있는데 거기는 아이들을 동반했다면 가 봐도 되는 곳이겠지요. 뭐 전 특별히 관심있는 곳은 아닙니다.

글로버 주택 그리고 언덕에서 보이는 나가사키 항

4. 나가사키의 먹거리 - 짬뽕, 카스테라 그리고 별사탕

 다음으로는 먹을거리에 대해서 좀 얘기해볼까 합니다. 나가사키에서 가장 유명한 먹을거리는 짬뽕입니다. 일명 나가사키 짬뽕이죠. 우리 짬뽕과는 좀 다릅니다. 흰 국물이죠. 아마 돼지고기 육수를 사용했을겁니다. 우리나라 짬뽕의 기원에 대해 몇가지 얘기가 있는데요, 그중 나가사키 짬뽕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라고 하는 게 가장 근거가 있습니다. 맛은 취향에 따라 다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별로입니다. 나가사키에는 일본의 3대 화교 거리가 있는데 그곳에 중국 식당들이 많이 있습니다. 굳이 명소란 데 줄서서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화교 거리가 있다는 건 예전부터 중국인들이 많이 살았다는 건데, 사실이 그렇습니다. 중일 교류의 핵심 근거지가 바로 나가사키입니다. 지금 화교 거리가 바로 그 자리입니다.

  그 다음은 카스테라입니다. 우리말에 이 있지 않습니까? 일본말로도 빵입니다. 이 말이 포르투갈어라는거 아셨나요? 일찍부터 포르투칼 사람들에게 빵 만드는 법을 받아들인 흔적이 바로 카스테라입니다. 그런데 카스테라는 일본 특유의 빵입니다. 핵심은 계란이죠. 일본 사람들은 계란을 아주 좋아합니다. 카스테라 원조라 하는 빵집이 있는데요, 몇 백년 되었다고 하는 빵집입니다. 먹어 볼만 합니다. 기념으로 구매해도 좋고요.

  그리고 나가사키 별사탕도 유명합니다. 초기 방식으로 별사탕을 만드는 곳이 아직도 나가사키에 있습니다. 별사탕 아지죠? 건빵에 조금씩 들어있던 것. 설탕을 큰 통해 넣고 오랫동안 가열하면서 돌리면 그런 모양으로 응고된다고 합니다. 나름 장인 정신이 깃든 먹거리입니다.

 

  그 다음엔 뭐가 있을까요? 아 나가사키는 일본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태어난 곳입니다. 아주 유명한 소설가이고 그 소설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생가 같은 건 없습니다. 아직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입니다. 영국에서요.

 

5. 숙소와 이후 일정

  숙소는 나사사키 하우스 부라부라를 추천합니다. 전통 일본식 방이 있는 작은 호텔인데요, 도심에서는 2-30분 정도 가야 합니다. 도심에서 가다보면 고개를 하나 넘어 가는데 도로를 끼고 자리잡은 산동네의 야경이 참 다정스럽게 느껴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고개만 넘어가면 아주 조용한 어촌 마을이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숙소에서 보이는 바다 풍경이 일품입니다. 거기에 aulong란 빵집이 있는에 아침 일찍 문을 엽니다. 맛있는 빵을 팝니다. 아침에 마을을 천천히 산책하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저는 그 마을 한 곳에 세워져있는 작은 원폭 위령비를 봤는데요, 민간인들의 입장에서 일본인들이 겪은 원폭의 아픔을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나가사키 이후 일정은 운젠시를 거처 시마바라시를 가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시마바라에서 배를 타고 구마모토로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운젠시는 지옥 온천으로 유명하고요, 시마바라는 <시마바라난>으로 일본 역사에서 아주 아주 유명한 사건이 일어났던 도시입니다. 역시 기독교와 관련 있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소도시입니다.

aulon 빵집 아침 일찍 문을 엽니다

 

역사를 반추하고 오늘을 생각하게 하는 곳 - 나가사키

  1차 아편전쟁이 1840년이니까 아마 그 무렵부터라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시아 나라들을 침탈하고 있다는 소식이 일본에도 들려왔습니다. 그들에게는 두려운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태풍을 머금은 바람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바람을 가장 먼저 맞이했던 곳이 바로 나가사키입니다. 그리고 그때 일본의 조슈와 사쓰마의 하급 무사들은 에도막부를 타도하고 새로운 일본을 만들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서구의 군함들이 항구에 들어오고, 거기서 혁명을 꿈꾸는 이들이 막부 정부 몰래 총기를 사들이고, 에도 막부에서 파견된 밀정들이 그들을 감시하러 나가사키의 골목을 오갔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데지마를 통해 서양의 각종 지식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네덜란드-일본어 사전을 만들기 위해, 서양의 의술을 배우기 위해 네덜란드 상인들을 만났던 곳, 일본 최초의 근대화된 해운업을 꿈꾸었던 료마와 그 부하들이 조슈와 사쓰마의 화해를 위해 분주히 오가던 곳. 그곳이 바로 나가사키입니다.

 

  저는 나가사키를 여행하면서 그 시대, 그 풍경을 상상했습니다. 비록 우리를 식민지로 만든 나라이긴 하지만 세계사적 변화가 거대하게 밀려오던 그 시절, 일본의 지식인, 사무라이들은 그 변화의 물결을 성공적으로 수용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민과 대응은 분명 배울 바가 많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더불어 조선 말기 우리나라의 지배층들은 어떻게 했는가를 비교해보기도 했습니다. 그 차이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미쓰비시 조선소와 바로 앞 군함도입니다. 주인은 일본이었고 많은 조선인들은  징용으로 끌려와 그곳에서 노동자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씁쓸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나가사키를 여행하면서 한 생각들입니다. 역사를 반추하고 오늘을 생각하게 하는 장소, 바로 나가사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