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들

내 어머니를 만들어 주세요

sungwo 2024. 9. 30. 14:31

 

 

 

본심 

히라노 게이치로

현대문학 / 2023년

 

 

소설에서 상상한 몇 가지

1. VR 기술로 탄생시킨 VF(virtual figure, 가상인간)

 

●   소설에서는 ----------------------------------------    
헤드셑을 쓰면 눈 앞에 가상 인간이 나타나 대화를 나눈다. 고객이 먼저 자기가 만들고 싶은 가상인간 (이 소설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다양한 정보(사진, 그와 나눈 편지, 이메일 자료 등 각종 온라인상의 자료들, 그를 아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 등)를 제작자에게 전달하면 제작자는 그 자료를 바탕으로 VR을 통해 볼 수 있는 가상 인간을 만들어 준다. 가상 인간은 헤트셑을 쓴 사람(주로 주문자)와 대화를 하면서 점점 더 자신의 지능을 높여 나간다. 또한 부가 서비스로 제공되는 각종 정보 취득 장치(뉴스 보기, 인터넷 서칭하기 등)를 통해 학습을 하며 스스로의 지능을 높여 나가 점점 더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거의 현실과 비슷한 가상 인간이 제공되면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 그러니까 이미 죽은 가족, 오래선 헤어진 애인, 친구 등을 가상의 공간에 만들고 그 가상 인간과 대화를 하며  심정적 위로를 받거나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관계를 실현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가상 인간은 인간과의 대화를 통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취득한 정보로 (주인이 기분이 나쁜지, 좋은지 등도 안면 인식이나 미세한 몸동작 등을 통해 인간보다 더 세밀하게 파악함)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더 대화가 잘 통하는 대상으로 변화할 수 있다. 
 
● 생각 -------------------------------------
 가상 인간의 탄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소설에서는 가상 인간으로 재탄생한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주인공은 이전에 몰랐던 어머니를 좀 더 자세히 알게 된다. 어머니의 과거 이메일에는 어떤 사람과 지속적으로 만나고 대화했던 기록이 있었고 어떤 사람과 아주 긴밀해 대화했던 카톡 같은 메신저들의 대화들이 남아 있어 살아있을 때 어머니가 누구와 친했고 어떤 것에 관심을 가졌는지, 언제 즐거워하고 무엇에 대해 슬퍼했는지를 더 자세히 알게 된다. 이를 통해 주인공은 가상으로 탄생한 <어머니>와 이전보다 더 진심을 담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가상 <어머니>와 더 진심을 나눠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내릴 수 있는가? 
 한편으로는 이같은 가상 인간은 인간의 염원 중 하나였던 영원성의 실현과 관련이 있다. 만약 나에게 내가 죽은 뒤 가상으로 재탄생할 선택이 주어 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나를 잊지 못하는 애인, 자식 등 나를 사랑하고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가상의 인간으로라도 남아 있고자 하는 욕망은 부정할 수 있을까 싶다. 가상 인간은 나가 살아있을 때 갖고 있던 온갖 기억들, 관계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데 이는 육체만이 아닐뿐 정신적으로는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를 지속적으로 만나고 싶어하는 이는 가상으로 만들어진 나와 만나서 위로를 받거나 적절한 조언도 얻을 수 있다. 즉 나는 이런 방식으로 영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술은 유익한가? 유익하지 않다면 어떤 논리로 부정할 수 있는가? 


2. 자유사


● 소설에서  ---------------------------------------
  자살에 대한 선택지가 점점 더 확대된다. 불치병 같은 막다른 조건에 몰리지 않았더라도 자유 의지에 의한 자살은 사회적으로 승인된다. 인간은 스스로 생의 마감을 결정할 권한이 있으며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주장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어 의사의 승인만 있다면 자살을 선택하고 이를 간편하게 실행할 수 있게 된다. 의사는 자살의 선택이 순간적 충동이거나 정신병적 증상이 아니라 이성적 사고에 기반해 결정한 것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간단한 심리 상담만을 거친 후 이를 승인해야 한다. 
  인간의 수명이 더더욱 증대되고 이에 따라 노인들에 대한 복지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됨에 따라 이에 대한 대책에 막막해하던 정부에게 ‘자유사’를 인정하는 것은 매우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이들이나 더 이상 생산적 노동을 할 수 없는 이들이 자유사를 선택해 준다면 복지 예산 운영을 하는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겉으로는 ‘삶을 스스로 마감할 권리’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등을 내세우지만 말이다. 
  ‘자유사’가 인정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이를 선택한다. 그중에는 본래의 긍정적 취지에 따라 고귀하고 자존적인 방식으로 자유사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강요된 방식으로 이를 선택하게 된다. 자신의 노후 생계를 해결할 방안이 없을 때, 자식에게 부담을 지우기 싫어서, 내 적금이 더 줄어들기 전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자식들에게 조금이나마 더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이를 선택하는 이들이 점점 늘게 된다. 더 진전된 경우 ‘자유사’를 선택했으면 좋겠다는 무언의 압박을 주변으로부터 받기도 한다. 이제 쯤 죽어줬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자식들이 한다. 

● 생각  ---------------------------------
 자살에 자유란 단어를 붙인게 꽤나 흥미롭다. 자유? 내가 선택했으니 자유인가?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된 경우 그것을 자유라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령 직업 선택의 자유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 안하고 놀 수만 있는 자유는  실질적으론 없다. 놀고만 살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경우 직업 선택은 필수이지 자유가 아니다. 선택하는 직업 역시 마찬가지다. 과연 경제적 조건과 무관하게 직업을 선택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는가? 
 이처럼 인간에게 부여된 자유가 기실 상당 부분 한계 지워진 자유일 때, 정부 혹은 공동체는 인간 개개인에게 어디까지 자유를 부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보통 자유를 확대하는 것은 좋다고 여기지만 사실, 자유의 확대는 다른 한편으로 정부 또는 국가공동체가 응당 짊어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결과를 낳게 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유의해야 한다. 가령 의무 교육을 없애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이외에도 강제로 의료보험 같은 각종 사회보험에 가입하게 하는 것, 국민연금을 내게 하는 것 등도 이런 경우와 빗대에 생각할 수 있다. 내 삶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것 또한 일리있는 요구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해당될 경우 내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이는 죽어도 마땅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다.  


3. 아바타 대행 서비스
 

● 소설에서  ----------------------------------------------
 사람이 고객의 아바타가 되어 고객이 요구하는 일을 대신하는 대행 서비스가 만연한다. 고객은 대행 아바타를 시간 단위로 구매한다. 대행 아바타로 선정된 사람은 VR을 쓰고 고객이 원하는 일을 한다. 예를 들자면 노령으로 움직일 수 없는 고객이 어렸을 때 살던 고향에 가 보는 것을 원하면 심부름을 하는 사람은 그곳에 가서 고글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고향의 풍경을 보여준다. 대행 아바타의 눈에 보이는 모습은 그대로 고객의 VR에 보여진다. 요청되는 서비스는 점점 더 다양해진다. 병문안을 대신 보내기도 하고 만나기 힘들었던 친구들을 대신 만나게 하는 등 실생활에 매우 필요한 일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도 생긴다. 누구를 미행하게 하거나 훔쳐보게 하는 일도 주문으로 들어올 수 있다. 

●  생각  -----------------------------------------------------
 이런 서비스는 지금이라도 당장 현실화 될 수 있다. 또한 좀 더 기술이 발전하면 시각 정보만이 아니라 더 다양한 감각 정보들을 대행할 수 있다. 청각은 당연하고 촉각 역시 전달될 수 있다. 대행 아바타가 느끼는 감각 정보는 그의 뇌 어느 부분에서 일어나는 감각 신호이며 이 신호를 받아 동일하게 고객의 뇌 어느 곳을 자극하게 되면 같은 감각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이미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되면 고객은 대행 아바타에게 섹스를 대신하게 할 수도 있다. 감각은 고스란히 전달될 테니 굳이 체력을 소모하면서 섹스할 필요성이 없어진다. 돈만 있다면 말이다. 
 만일 이런 서비스가 시작된다면 이를 허용해야 하는가 아니면 규제해야 하는가? 이 서비스의 많은 부분은 인간에게 매우 이롭게 사용될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거동이 불편한 이들에게 원하는 곳에 가 본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고, 소중한 만남을 가능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범죄에도 악용될 수 있다. 규제를 한다면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다른 관점에서 이를 막아야 한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이는 욕망의 실현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높은 산에 갈 수 없고 그리운 손자를 눈앞에서 볼 수 없다면 그것은 그것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그렇게까지 첨단 과학 기술과 사람을 동원해 이를 실현해야 하는가? 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반론도 당연히 따른다. 이같은 욕망이 인간의 수명을 늘려왔고, 불구를 치료해 왔으며 각종 편리한 장치들을 개발하여 인간의 한계를 확장 시켜온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문명의 역사 아니냐는 대답이 바로 나올 수 있다. 
 대행 아바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생겨날 수 있는 서비스다. 여기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외
 가상 인간, AI 등 미래 기술들을 소재로 한 소설들 몇 편을 봤다. 특히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 『나를 보내지마』 는 인상적이다. 소설들은 주로 AI를 다루고 있지만 생각의 종착점은 결국 인간이다. AI를 마주하게 될 미래에, 인간에 대한 해석은 다른 차원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이냐?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들 앞에서 기존의 대답으로는 궁색해질 것이다. 그래서 앞선 소설은 미리 이것에 대해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한국 소설 중 이같은 소설이 얼마나 나오는지도 궁금하다. 몇 해 전 AI를 이용해서 소설을 쓰는 내용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소설가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 될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밖에 어떤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혹 없다면 한국의 문단이 뒤처져 있다는 반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