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참 흔하게 쓰는 단어입니다.
삶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입니다. 어쩌면 모든 목표의 궁극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돈과 권력을 갖고 싶어하는 것, 건강해지고자 하는 것, 가족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것 이 모두가 바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종종 행복에 대해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저는 아직 스스로 행복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긴 좀 어렵습니다. 제 주변을 둘러봐도 그렇습니다. 가까운 친구들과 좀 깊은 얘기를 나누다보면 거의 대부분 요즘 힘든 것, 고민에 대해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아직도 미래는 불확실하고 지금의 삶에 대해 만족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뉴스에 발표되는 각종 사회적 지표 역시 행복하지 않다는 얘기로 가득합니다. 경제도 안좋고, 자영업자는 힘들고, 청년들은 미래에 대해 암담해하고, 자살은 늘어나고 ......좋지 않은 면에서 “사상 최악”은 매년 나오는 뉴스거리입니다.
이렇게 잘 사는 나라에서 왜 불행할까?
한편으로는 좀 이상한 일이기도 합니다. 경제 규모가 세계 10등 안에 들고, 세계 어디를 가 봐도 잘 사는 나라라는 평가를 듣는 게 우리나라입니다. 의료 시설도 좋고 대중교통도 한국만큼 싸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고도 하고, K팝이나 드라마처럼 세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한류 문화도 있는 곳인데 왜 우리는 이렇게 괴로워할까요? 왜 자살률이 가장 높고, 아이를 낳지 않을 정도로 미래에 대해 암담해하고 있는 걸까요?
그래서 저는 종종 행복을 다룬 책들을 봅니다. 행복을 다룬 책들은 여러 종류가 있겠는데요, 그 중에서 도덕이나 철학, 종교적 입장에서 나온 책들을 거의 제외합니다. 그것보다는 연구 보고서나 취재글처럼 가급적 객관적이고 과학적 입장에서 행복에 대해 조사한 책들을 선호합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행복한 나라의 조건』 (푸른 숲 출판사 2016)이 바로 그런 책들 중 하나입니다.
저자는 네덜란드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주로 독일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유럽 중에서도 독일 사람들이 좀 까탈스러운 모양입니다. 불평이 많고요. 행복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세계 13개국을 취재하게 되었습니다. 이 13 개국은 OECD가 행복한 나라라고 선정한 나라들입니다. 또한 이 책은 <세계 행복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즉 행복에 대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해답을 찾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이들 나라에 부탄이나 네팔은 없습니다. 행복에 대한 가장 높은 응답을 보인 나라로 이 두 나라가 뽑혔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사실, 이는 거의 무시해도 되는 얘기입니다. 전적으로 주관적 응답만으로 만들어진 결론은 사실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부탄. 아직 왕조인 나라입니다. 국민 개개인이 주권이 없어요. 언론의 자유도 없고,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어요. 네팔. 영아 사망률 높고, 문맹률 높고,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고 그래요. 많은 이들이 서양에서 관광 온 사람들 짊 옮겨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 맑게 웃는 모습 보면서 “저게 행복이야”하고 생각한다면 뭐 어쩔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하면 모두 다 떠올리는 나라 이름들이 있을 겁니다. 북유럽의 나라들, 스위스, 캐나다, 아이슬란드, 호주.... 네, 역시 그렇습니다. 그리고 예상밖의 나라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코스타리카, 맥시코, 파나나, 콜롬비아입니다. 중남미에 속한 나라들인데요, 매우 낙천적이며 가족과의 관계가 매우 도탑다고 알려져있는 나라들입니다. 가난하기도 하고 범죄율도 높은데 의외입니다.
어떤 점들이 이들 나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까요? 그건 이 책을 읽어야 알 수 있겠죠? 저는 그 중 인상적인 것 몇 가지만 여기에 남깁니다.
얀테 법칙 / 덴마크
당신이 특별한 존재라거나 우리보다 더 우수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너와 나의 가치는 같다는 의식, 얀테 법칙은 덴마크 사람들 뿐 아니라 노르웨이와 스웨덴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자랑은 아주 나쁜 짓이에요. 아무도 그런 짓을 하지 않아요. 물론 속으로는 좋겠죠. 와우, 새 차를 샀어! 그래도 절대 남에게 뻐기지 않아요. 직함도 자랑거리가 아니에요. 어떤 사람에게 박사니 의사니 하는 호칭을 붙여 부르는 것은 아주 난처하고 곤란한 짓이죠.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이에요. 그래서 정말 마음이 편해요.
행복에 대한 다른 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누군가 돈자랑하면 우려스럽게 본다고 합니다 . '저 사람 약간 정신적으로 아픈거 아냐?' 이렇게 말이죠. 그 나라에서 주식 올랐다고, 집 값 올랐다고 자랑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이건 조금만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 안되죠. 자랑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합니다. 그러니까 한국 사회가 불행한 거겠죠? ㅎㅎ
라곰 (많지도 적지도 않게)
바이킹들이 모닥불 주위에서 평화롭게 앉아 술간을 돌려 마신다. ‘라게트 옴’ 문자 그대로 옮기면 ‘모든 남자가 한 번씩“이라는 뜻. 모두 적당하게 마심. 자제하고 배려하자. 대장이건 졸병이건 차이가 없다.
이런 바이킹의 전통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과하지 않게 말입니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중용, 과유불급 이런 말입이다. 잘 안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들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뽑는 것은 ’신뢰‘입니다. 특히 국가와 정부를 전적으로 믿는다는 점이 부럽습니다. 정부를 믿으니까 자기 소득이 거의 절반 정도를 세금으로 걷어가도 불평이 없는 것이겠죠.
또 하나 ’개인주의‘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자면 개인주의야말로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일 수도 있습니다. 나를 존중하는 만큼 타인도 개인으로 존중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배려하고 예의 있고 함부로 으스대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함부로 간섭하거나 충고하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기절초풍할 만한 옷을 걸치고 다녀도 여기 사람들은 아무 관심이 없어요. 뭐를 해도 오케이거든요.”
남들의 시선 때문에 얼마나 불편한지 생각해보세요. 그 시선 맞추려고 비싼 돈 들여 유행하는 옷 사 입어야 하고, 아침마다 화장해야 하고, 양복 사 입어야 하고, 축의금 액수 맞춰야 하고..... 정말 끝이 없습니다. 그 시선 때문에 검소하게 살래야 살 수가 없어요. 빈티 난다고 뭐라 그럴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주의>야말로 자유와 평등의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소중하니까 개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행복을 선택하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소중하듯 타인 역시 소중히 대해야 하고요. 집단적 사회에서는 그것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위계가 있고 체면이 중요합니다.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정치에서는 집단을 이뤄 상대를 악마처럼 대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책의 한계도 분명합니다. 이 책에서는 그 나라들의 단점들이 상당히 가려져 있습니다. 북유럽 국가들에서도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복지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이 점점 더 분명해 지고 있고, 이것들이 사회 갈등의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사회의 활력도 줄어들고 있고 국가 전체의 경제적 경쟁력도 약화되어 들고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민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도 점점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들 사회에 더 이상 물질적 안락함이 보장되지 못할 때 지금의 정신적 가치들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궁금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내가 읽은 책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대를 해 주어야 할 의무 (2) | 2024.10.23 |
---|---|
당신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면? (1) | 2024.10.14 |
먹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 두 권의 책 (2) | 2024.10.03 |
클라라와 태양 / 죽을 아이를 대신해서 내 아이가 되어주렴. (0) | 2024.10.02 |
정말 능력 때문에 성공하는 것일까? (7) | 2024.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