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들

먹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 두 권의 책

sungwo 2024. 10. 3. 15:07

우연히 먹는 것과 관련된 책 두 권을 동시에 읽게 됐다. 한 권은 『전쟁 같은 맛/그레이스M.조』, 다른 한 권은 『먹는 인간/헨미 요』

전쟁같은 맛은 어떤 맛일까?

 『전쟁 같은 맛』은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계 이민 2세가 쓴 논픽션이다. 저자의 엄마는 기지촌 여성이었다. 조현병 환자였던 엄마는 음식을 잘 먹지 않았는데 특히 분유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영양소 섭취 때문에 걱정하는 딸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전쟁 같은 맛이야.”

미국의 식량 원조를 기다리던 신부는 이렇게 회상한다.

“‘양키’가 우리를 구하려 왔다는 말을 들었어요..... 쌀이나 보리를 기다리던 차에, 먹을 게 넉넉히 올 거란 생각에 침을 흘렸죠..... 그랬는데 분유만 끝없이 쏟아졌고, 그걸 타서 마시는 사람마다 며칠씩 설사로 고생을 했어요.”

분유가 어떤 이들에게는 전쟁 같은 맛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그래도 드세요. 

  『먹는 인간』의 저자는 일본인 저널리스트다. 이 책은 1994년에 나왔다. 전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쓴 음식과 문화에 대한 글들이 실려 있다. <가난한 아시아의 맛> <갈등하는 유럽의 맛> 이런 제목들이 달려 있다. 끝 부분에 <가깝지만 낯선 한국의 맛>도 있다. 거기에 일제 시대 위안부로 끌려 갔던 김복선, 이용수, 문옥주 세 할머니를 취재한 글이 실려 있다.

 

# 장면 하나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 안, 도시락을 먹는다.

김, 어묵, 김치가 담겨 있었다. 김 할머니와 이 할머니는 무릎에 손수건을 깔고 밥을 곱게 조금씩 입으로 가져갔다. 문 할머니는 호쾌하게 밥을 먹었다.

세 사람이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칼로 자결하려던 일이 있고 나서 열흘이나 흘렀다. 게다가 김 할머니와 이 할머니는 또다시 자결하겠다는 의지를 거리낌 없이 내게 밝혔다.

그래도 밥을 먹는다. 눈을 가늘게 뜨고서 밥을 먹는다. ‘그래도 드십시오. 언제까지고 밥을 드십시오.’ 나는 그렇게 바란다.

세 사람 가운데 한 할머니가 일본어로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하고 말한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밥을 먹는 동안은 그래도 마음이 놓인다.

 

# 문 할머니의 증언 중

잊을 수 없는 맛도 있다. 랑군의 위안소에 있었을 때다. 사령부 창고계 병사가 꽁치 통조림을 가져왔다. 달랑 통조림 하나에 채소와 소금을 곁들여 여자들 열 명이 나눠 먹었다.

“맛있었어. 정말 최고였어.”

 

나는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

  전쟁 같은 맛도 있고 잊지 못할 맛도 있다. 그렇게 맛들은 기억으로 쌓이고 그렇게 쌓인 기억들이 생애를 이룬다. 어쩌면 먹는 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일 수도 있다. 한 땀 한 땀씩 바느질이 이어져 옷이 완성되듯 한 사람의 생애도 한 끼 한 끼 먹는 밥이 없다면 이뤄질 수 없다. 그래서 다시 한번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먹는 것은 소중하므로 한 끼 한 끼 소홀히 하지 말고 정성스레, 맛있게 먹어야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