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 / 민음사
"나"를 "나"이게끔 하는 무엇이 있는가? 한 개인의 외모만이 아니라 기억과 경험, 더 나아가 감정까지 복제될 수 있다면 "나 만의"이란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이 모든 걸 복제해서 다른 개체에 붙여넣기가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상상이 존재하는 시대다. 이를 통해 영생을 꿈꾸기도 하는 그런 시대다.
"우리 세대는 여전히 과거의 감정을 지니고 살죠. 마음 한편에서 그걸 붙들고 버리지 않으려고 해요. 우리 내면에 가닿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계속 믿고 싶어 해요. 하지만 그런 건 없어요. 누구나 아는 사실이죠. (중략) 조시 내면에 클라라가 계속 이어 나갈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두 번째 조시는 모조품이 아니에요. 정확히 똑같은 존재니까 당신이 지금 조시를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그 애를 사랑하는 게 당연한 거예요."
- 카팔디 씨가 조시의 어머니에게 하는 말.
점점 병약해져서 죽을 것이라 여겨졌던 딸 '조시'의 어머니는 '조시'를 복제해 AI로봇 클라라에게 옮겨 놓는 것을 생각한다. 이를 시도하는 과학자 카팔디 씨는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망설이는 어머니를 설득한다. 어머니는 이를 조시를 돌보는 AI로봇 클라라에게 제안한다. 아이의 죽음을 감당할 수 없다고, 그래서 혹시 죽게 되면 네가 조시를 받아들여 영원히 내 곁에 있어 달라고.
클라라는 거기에 대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 대답을 하나 그것보다는 조시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기능을 퇴화시키거나 혹 정지시킬 수 있는 일도 주저하지 않고 행한다. 다행히 조시는 건강을 회복했고 클라라는 수명을 다해 야적장에 버려진다. 버리진 야적장에서 흩어져 가는 기억을 회상하고 있는 조시에게 옛 판매 매니저가 우연히 다가온다. 그에게 조시는 자신이 자기의 역할을 아주 잘 해냈다고 얘기한다.
"저는 조시를 배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래야만 했다면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잘 되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정확하게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머니, 릭, 가정부 멜라니아, 아버지. 그 사람들 가슴속에서 조시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는 다가갈 수가 없었을 거예요. 지금은 그걸 확실하게 알아요."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했어요. 어머니에게 계속 찾고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없더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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