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사람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사람, 장소, 환대
먼저 책의 저자에 대해 얘기할께요. 책의 저자 김현경씨는 인류학자입니다. 책갈피에는 “학술적인 논문에도 대중적인 에세이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실험하는 중이다”라는 소개가 있습니다. 이 책의 난이도를 짐작하게 할 수 있겠네요. 에세이보다는 좀 어렵고 전문적인 학술논문보다는 좀 쉬울 거라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정도의 글을 좋아합니다.
다음은 저자가 인류학자라는 점입니다. 인류학은 아주 오래된 학문은 아닙니다. 사전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는데요, 여러 조류와 학파가 있다고는 하나 인류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마 <슬픈 열대>라는 책을 쓴 레비 스트로스라는 사람일겁니다. 브라질 오지에 살고 있는 인디언들이나 동남아시아 마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책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인류학하면 학자가 아프리카 등지의 오지를 찾아가 원주민들과 생활하면서 어떤 연구를 하는 것이 연상됩니다. 최소 1년 이상 현지 사람들과 직접 생활하면서 연구하는 것이 인류학이라는 학문의 고유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다양한 지역에서 직접 원주민들과 생활하면서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그런 학문 분야입니다. 제가 ‘인류학’을 언급하는 이유는 인류학자들의 저술을 대부분 재미있게 읽은 기억 때문입니다. 참여관찰 같은 연구 특성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학문 분야와는 다르게 인간 사회나 문화에 대해 개성 있는 시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류학자가 쓴 책을 만나면 좀 기대가 됩니다. 이 책 역시 그러했고 또 그 기대에 부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은 아니다?
책의 제목은 사람, 장소, 환대입니다. 여기서 좀 새로운 단어는 “환대”입니다. 어떤 얘기를 이끌지 궁금해집니다. 먼저 사람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사람”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람 대우를 받는다” “사람답게 여긴다‘” 할 때의 의미로 쓰입니다. 생명체로서 “인간”이나, 보통명사로서 그냥 “사람”이란 개념과는 좀 결이 다르지요. 이렇게 써놓고 나니 이런 설명을 덧붙이는게 좀 이상하기도 합니다. 사람이니까 당연히 사람 대우를 해 줘야 하고 사람답게 여겨줘야지 거기에 대해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사람인데 사람처럼 여기지 않는 경우”는 너무도 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노예도 그렇고요, 예전에 양반과 평민 사이를 연상해봐도 그렇습니다, 유대인 학살처럼 전쟁과 학살의 역사를 봐도 도저히 사람 취급했다고 볼 수 없는 일들은 인류의 역사에 너무나 많으니까요. 오히려 사람이 모두 사람 대접을 받았던 사회가 더 드믈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것들처럼 이 책에는 사람을 사람답게 여기지 않은 다양한 사례를 설명합니다. 그중에는 우리가 그냥 일상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해 온 행동들도 많이 있습니다. 가령 어디를 가고 있는데 노숙자가 다가와 말을 걸면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못 본 척하는 거죠. 이런 행동 역시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경우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우리가 평소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하는 어떤 행동이나 상식들이 사실은 있는 사람을 마치 없는 것처럼 대함으로써 사람 대우를 해 주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이 책에서는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소
다음은 장소입니다. 저자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으로 “장소”를 들고 있습니다. “자리를 마련해준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어느 모임에 누군가 새로 왔는데 그 사람에게 자리를 내 주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되겠네요. 그것은 그 사람을 그 모임의 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표현일 겁니다. 이처럼 사람이 된다, 사람답게 대접해 준다는 얘기는 바로 그들에게 장소, 자리를 제공해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모든 사람은 “장소” “자리”를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 혹은 (국가)공동체가 어떤 사람들에게 “장소”를 내 주지 않고 배제 시키거나 어떤 장소에 고립시킨다면 그것은 그들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답게 여기지 않는 것이 될 겁니다. 예를 들자면 예전에 미국에서 흑인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을 제한한 일을 들 수 있습니다. 누구나 모두 이런 일은 차별이며 흑인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일이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에 이와 비슷한 일들은 일어나고 있지 않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가령 장애인 시설이 내 동네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일이나 접해 있는 임대아파트와의 통로를 제한하는 일은 이 경우와 얼마나 다를까요? 이처럼 이 책에서는 사람에게 장소를 내주지 않는 다양한 사례를 다룹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이런 일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환대해 주는 것의 의미
이제 “환대”에 대해 얘기할 차례입니다. 앞의 내용만으로도 자연히 도출될 수 있을 듯합니다. 사람답게 여긴다는 것은 바로 “환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대명제를 받아들인다면, 환대받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도 되겠고요. 환대는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행하는 증여나 선물과는 다른 겁니다. 누군가 베풀고 누군가는 받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거죠. 그런데요,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그다지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무조건 환대해야 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좀 어렵지 않습니까? 난민을 받아들여야 하느냐 마느냐 같은 경우처럼 “환대”라는게 좀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조건부 환대, 절대적 환대 갖은 얘기들이 나옵니다. 이 책의 결론은 “절대적 환대”인데요,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오는가를 따라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상호작용 질서
이 책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개념 중 하나는 “상호작용 질서”입니다. 말로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얘기하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얼마나 많은 차별과 불평등이 이뤄지는가를 이 책에서는 “상호작용 질서”라는 개념을 통해 세밀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읽다 보면 자신 역시 차별과 불평등의 질서를 고착시키는 행위를 자주하고 있다는 것을 깨우칠 수 있을 것입니다. 차별과 배제, 불평등의 문제를 국가나 사회 같은 추상적이거나 큰 구조만의 일로 돌리지 않고 개개인의 일상적 행위 속에서도 찾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큰 미덕입니다.
끝으로 핵심을 담았다고 생각하는 문장 몇 개를 옮깁니다. 함께 새기면 좋을 듯합니다. 어떤 문장은 제 요약입니다.
개인과 공동체는 대립적이지 않다
개인에게 자리, 장소를 마련해주고 그의 영토에 울타리를 둘러주는 것이 바로 공동체의 역할이다. 뒤르켐이 지적했듯이, 공공성이 강화될수록 사생활의 자유는 오히려 커진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사생활은 언제든지 침탈됨. / 공동의 힘으로 이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줘야 함
절대적 환대를 누구나 다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받아들이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절대적 환대가 타자의 영토에 유폐되어 자신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일, 그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자리를 주는 일, 그들에게 자리, 장소를 마련해 주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환대가 필요하며, 또한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환대는 공공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아동학대방지법을 만드는 것, 청소년 쉼터를 만드는 것, 집 없는 사람에게 주거 수당을 주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실업수당을 주는 일은 모두 환대의 다양한 형식들이다. ---- 자리를 준다. 환대는 사적인 영토를 주는 일이며 증여받는 대상이 되지 않게 하는 일이다. (받는 사람은 독립적일 수 없음 )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그 자리에 딸린 권리들을 주장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환대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권리들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그리고 하나 더, 흥미로운 부분이라 옮겨 적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웃음)
한국사회의 상속의 변화
전통적 가족의 토대는 재산(토지, 가업)임. 재산을 통제하는 사람은 나머지 구성원들을 통제할 수 있음 / 가부장제
현대 가족의 토대는 애정
- 현대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상속 재산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게 됨. 공교육 등에 의해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할 수 있으며.... 여자도 일함,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지 않아도 살아갈 기회가 있음 (그래서 현대의 가정은 재산이 아닌 애정으로 결속력을 지니게 됨)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이렇게 변한게 아니라....
부모들은 재산을 직접 물려주는 대신에, 자녀의 몸에 그것을 투자하고 그 몸을 물려주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상속자이면서 동시에 투자 대상, 즉 재산 자체가 된다. 외관상 많은 점에서 가부장제와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 새로운 가족 안에서, 재산의 관리 – 아이들의 몸과 시간표 관리 –는 여전히 구성원들의 관심을 지배한다. 상속이 특정한 시점이 아니라 양육 기간 전체에 걸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족은 만성적인 갈등상태에 놓인다. 부모님의 상속 프로젝트에 동의하지만 물건 취급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 아이들, 재산 관리인으로 자신의 역할을 인정 받고 싶어하는 엄마, 가장이면서도 이 프로젝트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느끼는 아빠가 갈등의 세 주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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