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유성운 출판페이지2북스 | 2024.8.5.
도발적인 제목이 붙은 책은 싫어하지만 그래서 읽게 된 이유
일단 제목이 도발적입니다. 독자들의 관심을 확 끌고자 하는 의도가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제목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실제 내용은 별로인 경우가 많았거든요. 이런 제목의 책으로는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전여옥이라고 아시죠? 2-3년 전까지 정치 프로그램에 패널로 자주 나왔던 사람입니다. 보수 진영 쪽 사람인데, 좀 센 발언을 많이 해서 반대 쪽에서는 싫어하는 사람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쓴 책인데, 출판 당시 제법 많이 팔렸습니다. 저도 그 책을 읽어봤는데 재미는 있었으나 겉핥기 같다는 느낌이 남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표절 의혹도 있었고 여러 가지 비판도 많이 받았던 책입니다. 그 기억 때문일까요? 저는 이처럼 제목을 도발적으로 내 건 책에는 별로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읽어볼 생각을 한 이유는 어떤 부분에 대한 관심 때문입니다. 제목은 이 책의 내용이 한국사를 좀 더 세계사적인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가깝게는 동아시아의 시야 속에서 한국사를 살펴봐야 한국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죠.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여러 가지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유익했었습다. 이 책 역시 그런 기대를 갖고 펼쳐보게 되었습니다.
이와미 광산을 아시나요?
이와 연관된 얘기를 하나 더 해보겠습니다. 이 책에도 나오는 내용인데요. 일본의 <이와미 광산>에 대한 얘기입니다. 몇 해 전 친구와 일본에 대한 얘길 나누던 중에, “대항해 시대에 이와미 광산에서 생산한 은의 량이 세계 두 번째에 달할 정도로 많았고, 일본은 은 수출은 16세기 대항해 시대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저도 이전에는 전혀 모르고 있다가 언제인가 대항해 시대를 다룬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우리 세대 대부분이 그렇듯 일본을 싫어하는 그 친구는 “그런 얘기는 듣도 보도 못한 얘기다, 무슨 일본이 그렇게 역사적 영향을 끼쳤겠느냐”라며 사실 자체를 부인했습니다. 그게 임진왜란 전부터 시작된 일인데, 그 당시 일본이라고 하면 “왜구” “사무라이”처럼 머리는 빡빡 깎은 채 웃통 벗고 다니는 칼잡이 정도만 연상했던 사람들에게 “세계 2위의 은 생산량”이란 얘기는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렸을 겁니다. 저도 그 사실을 서구 저자의 책에서 처음 접하고는 고개를 갸우뚱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와미 광산>에 대한 내용은 16세기 대항해 시대를 다룬 역사책에서는 종종 나오는 얘기이며, 특히 그 시대 동아시아 역사에서는 거의 필수적으로 등장합니다. 당시 명나라에서는 은(銀)으로 세금을 납부하였는데 만성적으로 은이 부족했습니다. 당시 포르투칼이나 스페인 상인들은 일본에 총포 같은 무기를 팔고 은을 마련해, 이를 중국에서 금과 교환했다고 합니다. 시세 차이가 있어 이익이 되었다고 하네요. 이렇게 은을 팔아 구입했던 총포 같은 무기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는데 사용됩니다. 그 당시 명나라는 조선과 달리 일본에 대해서는 조공·책복 체계를 허락하지 않아 무역이 되지 않았던 것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에 불만이 있었던거죠. 임진왜란 이후에는 조선의 인삼, 중국의 도자기, 일본의 은이 동북아시아의 주요한 거래 품목이 되기도 합니다. 거기에 사용된 은이 바로 이와미 광산에서 캔 은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이렇게 대규모로 은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조선에서 처음으로 발명된 <연은분리법>이라는 혁신적이 은 생산 방법이 때문입니다. 이와미 광산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는데 그들의 기록에 따르면 1526년 하카타의 상인이 본격적으로 개발하였고 조선에서 경수와 종단이라는 두 기술자를 초빙해 연은분리법을 습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조선에서는 그보다 이전인 「연산군 일기」에 양인 김감불과 장례원 소속 노비 김검동이 연은분리법을 개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같은 혁신적인 생산 방법이 조선에서는 중종 때 이르러 억제되었는데 그 이후 이 기술이 일본에 유출되면서 일본의 이와미 광산의 개발을 촉진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이유는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지방 무사들의 힘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그랬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임진왜란의 역사는 이순신, 권률 같은 영웅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일본이 그렇게 쉽게 조선을 정벌할 수 있었던 힘의 배경에 바로 은이 있었다는 것이나 그것과 관련된 명나라와의 교역 관계에 대해서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거죠. 이렇게 알고 보니 역사가 좀 새롭게 보입니다.
압록강이 얼어붙었으니 군마는 달린다.
또한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기후 변화에 대한 얘기입니다. 한국사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이 사실은 기후 변화와 연관이 있다는거죠. 하나만 예를 들자면 병자호란입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소빙기가 찾아와 지금보다 연평균 온도가 2도 정도 낮았습니다. 당연히 농업 생산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겠죠. 이런 상황속에서 명나라와의 대결을 준비하던 후금에게 조선은 식량 배후 기지로서 그 중요성이 더 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를 위해 조선을 침략하게 됩니다. 후금은 조선에 대해 항복 조건으로 쌀 1만석 바치게 했고 이후로도 계속 쌀을 요구해서 1644년는 5만 3,872석, 1645년 10만석을 바치게 합니다. 병자호란 발생의 핵심적인 이유는 아니겠지만 기후 변화는 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후금의 군대가 그렇게 빨리 이동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가 바로 추위 때문이라고 합니다. 압록강을 비롯해 모든 하천이 꽁꽁 얼어붙었으니 말 달리기 좋았던거죠. 그래서 인조는 미처 강화도로 피난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도망간 거고요.
초겨울, 해질 무렵, 한양도성의 풍경
하나 더, 이때부터 우리나라에 온돌이 대규모로 보급되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이전에도 온돌은 있었지만 보편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는데 날씨가 추워지면서 모든 집에 온돌이 필요해졌고 이는 곧바로 조선의 산림을 황폐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정조 때 기록를 보면 “옛날에 8-9냥이면 사던 땔나무가 지금은 30-40냥”이라는 내용이 나온다고 합니다. 아마 이때 즈음 한양의 인구가 20만 정도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양의 겨울 풍경이 어땠을 것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집에서 땔깜을 때면 한양 전체가 자욱한 연기로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주변은 온통 민둥산들뿐이고요.
시야를 넓히게 되면 새롭게 보이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이런 예처럼 역사를 바라보는 시야를 좀 넓히게 되면 새롭게 인식되는 사실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국제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던 시대이지만 우리의 역사는 중원이나 일본,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일들과 연관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원나라와 고려의 관계, 명나라와 조선, 그리고 근대에 가까워질수록 일본과의 관계도 우리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저자가 책 제목을 “한국사는 없다”라고 도발적으로 내세운 이유도 이를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소제목들도 흥미롭습니다. <왜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동물은 곰이 아니라 호랑이가 되었는가?> 같은 흥미를 끄는 소제목마다 재미있는 얘기들이 여럿 실려 있습니다. <낙랑군>에 대한 얘기부터 조선 말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한 얘기까지 우리가 일부는 알고 있었지만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역사적 사건들을 세계사, 혹은 동아시아사의 시각에서 새롭게 다루고 있습니다. 읽기도 편합니다. 기자 출신 저자들의 책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권하는 강도는 “중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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